솔직히, 뒷담화는 재밌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리뷰

2019. 6. 14. 16:29Contents/예능

  엄마는 일요일은 늘 간단한 아침상을 TV 앞 탁자에 놓아주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보기 위해서다. 그때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결국은 끝까지 다 보곤 했다. 떡을 입에 오물거리며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꼭 옛날얘기를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일을 하게 되면서 엄마와 같이 프로그램을 보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늦잠을 자고 거실에 나가면 혼자 아침을 먹고 있는 엄마를 더 자주 보았다. 언젠가부터 내게 서프라이즈는 ‘안 봐도 그만’인 것이 되어버렸다.

 

추억의 인트로

 리뷰를 위해 지난 867회분을 정말 오랜만에 시청했다.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TV 앞에서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옆에 앉아 고소한 커피 향을 킁킁거렸다. 엄마는 나를 힐끗 보더니 오늘은 웬일로 아침을 다 먹느냐며 양쪽 어깨를 가볍게 들었다 내렸다. 머슴 같은 딸은 말없이 구운 떡을 집어 들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그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익숙한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이 사운드는 언제 들어도 참 묘한 매력이 있다. 놀이동산에 입장할 때의 설렘 같은 게 마구 샘솟다가, 어느새 또 맘이 편해진다. 엄마의 옆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추억의 인트로가 끝날 때 즈음, 나는 십 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진실 혹은 거짓

“저거 가짜야”

 이상하게 생긴 두개골이 앞뒤로 붙어있는 사진을 보면서 내가 목청을 높였다. ‘두 얼굴의 사나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나는 처음부터 이야기가 허구(Fake)일 거라 생각했다. 의심이 많은 탓일 수도 있지만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 기생 쌍둥이라는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 근데, 어떻게 거짓말이 의학저널에 실릴 수 있지?”라 하면서 남자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프라이즈는 늘 그랬다. 나를 재잘재잘 떠들게 한다. 평소 나는 집에서는 거의 몇 마디도 안 하는 무뚝뚝한 딸이었다. 엄마가 반 친구들에게서 내 소식을 들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서프라이즈를 볼 때는 저런 게 말이 되느냐, 이게 무슨 미스터리냐 하면서 열을 올리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재밌어했다. 어쩔 땐 내 호기심을 더 돋울 때도 있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나는 ‘진실 혹은 거짓’ 코너를 못 빠지게 기다렸다. 엄마는 내가 흥분할 때면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꼭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되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어설픈 추리를 늘어놓곤 했다. 돌이켜보면 일요일 오전은 가장 높은 데시벨로 엄마와 대화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두 얼굴의 사나이’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추리 왕이 되고 싶었던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만유 ‘인류’의 법칙 = 가십(gossip)

 일찍부터 가십의 재미를 맛본 것 같다. 엄마는 잔 다르크, 히틀러,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죽음과 같은 유명 인물들의 비화를 많이 알고 있었다. 헤밍웨이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에도 “헤밍웨이, 부인 많았던 거 알지?”라면서 내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헤밍웨이의 딸이 늙어서 맨몸으로 거리를 활보한 에피소드도 사실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보다 가십에 가깝다. 나는 대문호의 사생활도 별수 없구나? 하면서 또 조잘거렸다. 엄마와 나는 TV를 응시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 중에 뒷담화만큼 강력한 게 있을까? 가십은 ‘결국 너도 나랑 같은 인간일 뿐이야’와 같은 약간의 위안을 준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유명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색한 사이도 금방 쉬운 대화거리를 만들 수 있다. 서프라이즈의 인기는 역사적이거나 희대의 사건들만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의 유명 가십들을 심도(?) 있게 다뤘단 점이 장수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웬만한 유명 가십들을 서프라이즈를 통해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때는 지금만큼 외신이나 해외 커뮤니티 접근이 쉽지 않았다. 해외 이야기를 재연한 프로그램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외국인 재연 배우들을 처음 봤을 때 무척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오랜 시간, 서프라이즈는 다양한 가십거리를 사람들과 나눌 기회를 선사했다. 이것이 서프라이즈 프로그램의 확고한 캐릭터를 만드는데 이바지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그렇게 우리는 매주 일요일 오전, 서프라이즈에 거실 한구석을 내주었다.

 

 ‘현상유지만 한다’거나 퀄리티에 대한 혹평도 있다. 프로그램을 몇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특정 소재들이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피소드들이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같은 아이템을 재탕해서 라기보다 ‘비슷한 레퍼토리’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그런데!’ 장면이 삽입된다!) 그럼에도 애청자층이 두텁다. 여전히 일요일 아침이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켜는 마니아들이 있다. 엄마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제 서프라이즈는 최장수 프로그램이 되었다. 80~90년생들에게는 전원일기 격이 되어버린 프로그램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서프라이즈는 부모 세대와 우리를 화합(?)하게 한 피스메이커(peace-maker)였다. 그 비법은 솔직히, 재밌는 뒷담화 때문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