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을 위해 필요한 습관

2019. 7. 15. 22:54Contents/라디오

“알 수 없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두렵겠지만 괜찮을 것 같아 보여. 지금 행복하다면.

어른이 되어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 걸. 모든 게 그렇듯 행복도 습관이거든.”

 

  아이유의 Teacher (feat. Ra.D)라는 노래를 듣다 꽂혔던 소절이다. 아 이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행복도 습관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에도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다. 여행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여행을 위한 습관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여행을 꿈꾼다. 물론 즐거운 여운이 남는 여행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알찬 관광 뒤에도 공허함이 남을 때가 있다.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듣게 된 건 순전히 프로그램명 때문이었다. 여행에서 공허함을 느끼지 않고 행복을 거둘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줄 것 같았다. 소리만으로 여행의 어떤 맛(?)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여러 팟캐스트를 들어온 자칭프로 청자로서 라디오를 통해 넋 놓는 기쁨을 오랜 시간 즐겼다. 여행의 맛에서는 재밌는 여행 동화 듣는 기분을 선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노중훈 여행작가님의 아재 미()(?) 넘치는 진행이 도드라졌다. 편성 시간이 토요일 오전 7 5분인 것도 주 청자가 부모님 세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불타는 금밤을 보낸(혹은 꿈꾸는) 2030일 것 같지는 않았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내 방을 가득 채울 방송으로 점 찍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그런 의문은 조금씩 없어졌다. 노작가는 국내외 대부분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훌륭한 여행지도를 소유한 지인을 만나게 된 것 같았다. 7 6 () 방송분 중에서는 경향신문 노정연 기자의 스웨덴 스톡홀름 여행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행복 습관 1 – ‘함께 누리는작지만 확실한 행복들

 ‘스톡홀름은 섬들의 도시로 알려졌으며 유명한 구시가지는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다’, ‘많은 박물관/미술관들이 모여 있다는 박물관 섬이 있다와 같은 이야기는 일반 여행 책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개였다. 하지만호텔 직원과의 대화엔틱샵 지하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달랐다. 내 감성과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다. 기자는 배정된 호텔 방 전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다시 내려가 방 변경을 요청하자 호텔 프런트 직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가장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고 한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날씨도 너무 좋고

스톡홀름의 여름이 시작되었으니 나는 너무 행복(happy)하다.”

 

 나는 이 멘트가 참 낭만적이라 생각했는데, 방송 흐름 상 대수롭지 않게 웃고 넘길 수밖에 없던 게 조금 아쉬웠다. 사실 유럽에 가보면 그런 손발이 사라지는 현지인들의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당장은 참 여유가 넘치는 나라구나 하면서도, 한국에 돌아와 기억을 떠올려 보면어떻게 그렇게 멋진 생각을 하지?’ 하며 감탄한다. 스톡홀름의 호텔직원도 여름이 시작된 일상에 행복의 의미를 부여했다. 나아가 그 행복을 상대와 공유하는 마음마저 지녔다. 부러운 행복습관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건축이나 미술품보다 이런 문화적 관점의 차이가 주는 감동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은 곳을 다녀본 전문가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현지인들의 어록을 얘기해 주는 시간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약간의 상황 설명까지 보태진다면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문화적 차이를 직접 경험한 기분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행복 습관 2 – 행복은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두 번째는 엔틱샵 지하 공간 일화다. 공예품이나 그릇에 관심이 많은 기자가 엔틱샵을 돌아다녔는데 대부분의 가게들이 지하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지에 가본 사람만 해줄 수 있는 얘기였다. 그 공간은 더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밴드 공연을 하는 일도 있었다 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가게에서 공연이라니?’ 내가 처음 유럽을 갔을 때 받은 두 가지 인상이제멋대로운치였는데 딱 그 느낌에 부합했다.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든, 식사하는 곳이든 음악이 필요하면 언제든 악기를 꺼내 공연할 수 있는 게 그쪽 사람들의 정서인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거나 재밌는 일정을 세우는 모든 행위는 모두 행복한 경험을 위한 것이다. 좋은 기억을 남기고자 함이다. 하지만 사실 거창한 준비 없이도 우리는 엔틱샵의 연주자들처럼 당장 어디선가 행복을 실천할 수 있다.

 방송에서 아쉬웠던 점도 이런 독특한 경험들을 패널들이 좀 더 얘기해 주었으면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었다. DJ가 패널들에게 조금 더 많은 질문을 해 문화적으로 생소했던 경험을 풀어주면 어땠을까 한다. 그렇게 진행만 된다면 청자들이 다른 여행 방송보다 본 프로그램을 더욱 특별히 여길 것이다. 물론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대하고 기억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여행자(청자)의 몫이다. 넘쳐나는 정보들이 여행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여행은 항상 좋은 것, 해야 한다는 요즘의 분위기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여행이 어떠해야 한다는 수많은 논평도 일방적이어서 불편하다. 하지만 기왕 할 여행이라면 내가 어떤 행복을 얻을 것인지에 관한 기준은 각자가 정의해볼 수는 있지 않은가? <여행의 맛>을 청취하며 평소에도 행복할 수 있는 나만의행복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닌 길이라는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처럼, 어딘가로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행 중인 상태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조차 어떤 행복을 누릴 것인지 궁리할 책무가 있다. 그 고민은 결국 행복 습관으로 남아 앞으로의진짜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