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TV 속 주인공이라면?

2019. 8. 7. 11:06Contents/예능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동요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은 오랜 세월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켜 놓으면 종종 들을 수 있는 흔한(?) 노래였다. 아직까지도 길거리 뉴스 인터뷰를 하고 TV에 나왔다~”라고 SNS에 캡쳐 본을 올려 자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TV에 나온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에게 매우 설레는 경험인 듯하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효과나 파장이 갈수록 약해지는 건 분명한 듯하다. Youtube, Africa TV 등 각자가 출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콘텐츠 시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세요로 제목이 바뀐다면 모를까? 저 노래는 이미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스스로가 카메라 앞에 서는 시대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전지적 참견 시점> 본래의 기획의도는 매니저들이 스타들의 ‘리얼일상’을 거침없이 제보해주는 것이

었다. 연예인들의 뒷얘기를 최측근인 매니저들이 폭로해 줄 것이라니! 어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하지만 63회를 맞이할 지금의 <전참시>의 모습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스타들 못지않게 매니저들이 인기가 많다. 스타에서 매니저로 주목의 대상이 옮겨갈 정도다. 매니저에게 묘한 질투를 느끼는 스타들의 모습도 신선했다. 재밌는 현상이다. 작년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이영자가 대상을 받자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던 송성호 매니저나 박성광과 커플상을 수상한 임송 매니저는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전참시>가 특별한 이유 1: “매니저들의 매력 발굴

작년만큼의 감동이 이어질 수 있을지 하며 약간은 시들(?)한 마음으로 지난 주 방영한 62회분을 시청했다. 파이터 김동현과 정유성 매니저, 그리고 새롭게 배우 박진주와 서창일 매니저가 출연했다. 정유성 매니저는 전형적으로 조용한 사람들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연예인 싸움 순위 Top7’을 가르는 방송을 녹화중인 김동현을 보며 건너편에 조용히 앉아 빙그레 웃음 짓는 정 매니저는 감성 파이터들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김동현이 정유성 매니저에게 갑작스러운 통역 요청을 했을 때 그의 어색하지만 진지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김동현은 행사장에서 안내를 맡아준 외국인 관계자에게 안내를 해주어 고마웠다는 말을 통역하라며 옆에서 채근했다. 이에 정유성은 땡큐 포익스플레인 인 히어…”라고 또박또박 꾸밈없이 김동현의 말을 옮겼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대충 피해갈 법도 한 데, 매사 진지하게 김동현이 뭐라고 말하는지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서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 보따리가 넘치는 김동현과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몇 년 전 읽었던 수잔 케인의 <Quiet 콰이어트>라는 책이 떠올랐다. 저자는 외향성이 우성이라는 고정관념에 반론을 던지며 세상을 바꾸는 건 조용한 사람들이 가진 장점인 내면의 힘이란 점을 설파했다. 수줍음이 많지만 진지하고 사려 깊은 정 매니저의 모습은 책처럼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을 것 같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정매니저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차했으나 박성광의 매니저였던 임송 매니저도 같은 성향의 인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매니저들과 함께 인기상을 받았던 송이 매니저는 오빠 나만 상 받아서 미안해요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장면이 웃음에만 그치지 않았던 이유는 누군가(여기선 박성광)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사람들(매니저들)이 다수 앞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원하지 않아도 묻혀서는 안 될 일들을 제작진이 발굴해 내어 모두가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사회 초년기의 어려움을 떠올려 보면 송이 매니저의 일상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리얼리티가 넘치는 것이었다. 정매니저나 송이 매니저 모두 내게는 인상적인 주연들이었다.

 

 

<전참시>가 특별한 이유 2: “매니저의 본업공개

스타와 일반인의 경계를 허문다는 게 마치 매니저가 ‘TV 스타가 되었단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전참시>가 재미있고 감동적인 지점은 스타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매니저와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려는 자세에서 나오는 팀워크 정신이다. 박진주와 서창일 매니저의 끝나지 않는 회의가 정확히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 뷰티부터, OST 커버까지 샘플 영상을 찍으며 버벅 거리는 박진주의 모습은 1인 콘텐츠를 준비하는 일반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안녕하세요, 치치에요!’라고 외치는 모습도 어색한 나머지 저래서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가진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성심 성의껏 카메라에 담는 서창일 매니저의 모습은 박진주의 정말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영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압도적으로더 많다. 스타들은 물론이고 인기 유투버까지 생각하더라도 생산자는 극히 소수다. TV에서 매일 보는 스타들도 당시 가장 핫한 사람만 떠올려보면 손에 꼽는 정도다. 다수의 시청자 층은 생산된 콘텐츠들을 보면서 즐거워하다 곧 지난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를 방구석에서,지하철에서 조용히 웃음 지으며 감상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거칠게 보면 방송이란 결국 소수의 사람들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전참시>는 스타들의 리얼 일상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을 하나의 드라마로 재탄생시키며 시청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스타들과 매니저들의 하루하루는 예능이라기엔 너무도 현실적이었고, 우리의 일상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들을 조명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예능이다. 오늘도 쉴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주인공들을 <전참시>가 계속 응원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