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8. 10:08ㆍContents/드라마
사진, MBC <배드파파> 공식 홈페이지
가장. 자식. 돈. 벌써 지겹다. <배드파파>를 무심코 보다 이걸 왜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TV 드라마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스토리에 대해서도 전혀 할 말이 생기지 않았다. 모든 캐릭터는 내내 자식 타령만 한다. 온통 존경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캐릭터를 보고 어떤 연민을 느끼겠나.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착각과도 같은 드라마다. 의미 있는 이야기적 사건이 나오기도 바쁜 시간에 온갖 캐릭터들이 자식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을 물 쓰듯이 쓴다. 일종의 구시대적 환상과도 같다. 그런데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버지가 떠오르기보다는 어느 한 때를 함께 했던 나의 선배가 떠올랐다. 이 글은 오로지 선배를 생각하며 쓰는 글이다.
남자 주인공인 유지철(장혁)은 한 때 잘 나갔던 복싱 선수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다 신약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고 약을 한병 들고 돌아온다. 그런데 이 약이 유지철에게 괴력을 선사한다. 그는 이 약을 통해 UFC에 데뷔해 모든 경기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가장 노릇을 해본다. 좋은 차와 집을 산다. 딸에게는 좋은 명품 가방도 선물한다. 여자 주인공인 최선주(손여은)는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던 중 남편 유지철의 후배이자 자신의 친구인 이민우(하준)를 만난다. 최선주는 이민우의 첫사랑이다. 이민우는 자신의 자서전을 최선주에게 부탁하고 그녀의 첫 소설까지 출판하는 것을 돕는다. 결국 최선주는 이민우의 도움으로 자신의 작품을 낸다. 그들은 노력도 없이 무언가를 성취한다. 약을 통해서. 지인을 통해서.
선배와 나는 허름한 술집을 전세라도 낸 양 소란스럽게 떠들고 시끄럽게 울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그러던 날들이 있었다. 하루는 내가 시험에 떨어져 징징거리던 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그저 분했던 것 같다. 선배는 술에 취해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건 너의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데 나쁜 경험이 된다.” 나는 그 말을 아직도 가끔 떠올린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선배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살아가면서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런 건 대개 비겁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얻었다고 해도 쉽게 잃어버렸다.
MBC <배드파파> 공식 홈페이지
<배드파파>의 중심 소재는 가장과 돈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쁜 인간이 되길 택하는 가장의 모습을 그린다고 이 TV 드라마는 말한다. 유지철은 UFC 계약금으로 10억을 얻는다. 곧장 차를 사고 딸이 갖고 싶어 했던 명품 가방을 산다. 먹고살만해지기 시작하면서 캐릭터들은 자신의 숨겨왔던 꿈을 펼치기 시작한다. 최선주는 작가가 되고 딸인 유영선(신은수)은 댄스 경연에 참가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돈이 없으면 꿈도 꿀 수 없다. 가난한 집의 재능 많은 자식은 불효자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건 우리가 아직도 최소한의 삶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선배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돈과는 상관없이 꿈을 좇아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유치하게 느끼한 말로 수식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드라마가 보기 싫다. 선배는 우선 돈을 벌었다. 지금도 돈을 벌고 있다. 예전의 꿈과는 멀어졌지만 그 일이 좋다고 했다. 선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좋은 회사에 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꿈과 가까이 있었고 아주 천천히 자신이 바라 왔던 일들을 해나갔다. 선배는 그 사이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잡았다.
아무런 할 말이 없는 TV 드라마라고 외치는 가운데 어떤 의미를 찾은 건 다 선배 덕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이 TV 드라마에서처럼 우리는 여전히 때때로 노력 없이 무언가를 얻길 원하고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다. 사실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세상이고 먹고사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여전히 노력과 하고 싶은 일은 우리 삶의 최소 단위이다. 선배는 내게 그걸 가르쳐줬다. 역설적이게도 어떤 성취가 없을 때, 이제는 적어도 그것이 사회의 문제일지언정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선배는 나의 고등학교 선배도, 대학교 선배도 아니었지만 나는 선배를 선배라 불렀다.
- M씽크 1기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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