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지쳐버린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

2019. 11. 11. 21:06카테고리 없음

몇 년 간 열심히 일을 하다 퇴사를 선언했다. 대학원에 지원을 했고 운 좋게 도비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덧 일년이 지났고 친구가공부는 할 만한지 물어왔다. 친구는 자기는 공부라면 이제 질색이라며 안쓰러운 듯 내 얼굴을 살폈다. 친구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고 있자 하니 내 스스로가 신기해질 지경이었다.

 

그럴 만했다. 나는 엉덩이 가벼운 학생이었다. 성적관리에는 아주 젬병이었다. 반면 친구는 나보다 성적이 뛰어났다. 대표적인엉덩이 힘이 강한 친구였다. 내신 교과로 전교 1, 2등을 앞다투었으니 성실하고 시험을 치르는데 능한 친구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미없는 과목들까지 몇 년 간 일관된 자세로관리하는 것은 말 그대로 피 말리는 일이었다. 그럴 능력도 안됐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등수 전쟁에서 자체적으로 기권을 선언하고 내 나름의 평화를 찾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공부에 더 적합한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닐까? 지금처럼 반대인 상황은 영 어색한 일이 아닌가? 난 여기 있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그런데 왠지 모르게 공부가 지긋지긋 하다는 말에 계속해서 나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그녀에게 공부란 입시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대학원 공부는 또 다른 것이라 어느정도 짐작은 했겠지만 친구에게 책을 펴고, 무언가를 머리에 넣는다는 것 자체가 시험을 치르는 행위와 연결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대학원에 입학한 목적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시험을 잘 치러 들어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구구절절 공부란 무엇인지 대화를 시도하며 그녀에게 지옥같은 입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싶진 않았다.

 

얼마 전 파일럿으로 방영된 <공부가 머니?>라는 교육 버라이어티 토크쇼를 보며 공부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확실하고정확한 곳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기획 의도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공영방송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맘카페 댓글만 보아도 대치동에서 3남매가 34개 군데 사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는 게 불편했다는 평이 많았다. 패널로 나온 교육 컨설턴트나 아동심리 상담가가 제안하는 영재교육이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애초 영재(?)가 아닌 아이들은 더 불안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조차 아이큐만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문제지 정보 나 상담에 드는 비용 등이 완전히 공유가 된 것도 아니었다. 학부모들의 욕망만 자극하고, 솔루션은 없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공부가 머니?> 프로그램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와 불만이 충분히 이해된다. 대다수가 아이들의 자유와 행복 재능이 경쟁에 몰아넣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의 기분을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을 좀 풀어주고 싶다는 탤런트 임호의 부인의 고민처럼, 우리의 마음은 그것이 옳은 방향인 것을 막연하게 느끼며 있다. 그리고 공영방송이라면 세상이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희망을 살아 숨쉬게 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나 또한 연예인 가족들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저 또래라면 대학 입학은 꿈도 못 꾸겠다는 생각마저 들어 허탈했다.

그런데 정글 같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당장 행복하게 크는 것만 강조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손쉽게 입시 전쟁에 결별을 선언하기에는 입시라는 건 피할 수 없는 관문이 되어버렸고 그만큼 민감한 문제다. 대학입시에 대한 욕망은 결코 쉬이 줄어 들지 않는다. 부모라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모른 척하기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대체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의 환경이, 주변사람들이 끊임없이 좋은 학력을 더 선호하고 이 관문에 통과했을 때 취업과 같은 그 다음 문이 여전히 더 쉽게 열리기 때문이다. 같은 환경에 살고 영향을 받고 있는 나도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대체 공부란 무엇일까? 나는 친구들과 떠들고 웃느라 교실 뒤에 쓰러져 있는 게 일상일 정도로 노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8할은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내가 정의하고 싶은 공부는 그런 순수한 궁금증에서 오는학습 동기혹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입시를 이미 치룬 사람의 안일한 회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태도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유용하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처럼 산만한 사람이 대학원까지 온 것은 모두 이러한 탐구의지가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과 시청자들에게지적 호기심을 찾아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가장 적합한 교육 솔루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의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러브하우스와 같은 히트 프로그램들은 MBC만의 도전 정신을 담는 기획이었다. 이번 <공부가 머니?> 또한 그런 새로운 도전 중 하나로 생존주의(사회학자 김홍중은 청년들이 IMF 이후 생존주의자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경쟁의 목적이 승리가 아니라 도태되지 않는 것, 자신의 모든 역량을 자본으로 전환할 것 등을 생존주의 특징으로 도출했다) 시대에 경종을 울려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적합한 학습동기를 찾는다는 것은, 전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이 말한학습 결손을 학생 스스로 인지하고, 머나먼 입시를 헤쳐 나갈 동력을 제공해 주는 걸 의미해야 한다. 학생 별로 어떤 학습 결손이 생겼고 이를 어떻게 보완할 지 구체적으로 그 공부 방법과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면, 본 프로그램은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토크쇼가 될 지도 모른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 프로그램에 희망을 거는 이유다.

지적 호기심의 숨겨진 순기능도 있다. 무언가를 알고 싶은 욕구가 너무 큰 나머지 탐구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지, 얼마나 막강한 엉덩이 힘이 필요한지 수시로 망각하게 해준다. 이것이 없었다면 난 절대 이렇게 무모하게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의지는 시험뿐 아니라 어디서나 필요한 삶의 자세다. 당장의 입시 결과가 가장 중요한 애석한 현실은 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것 일지라도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과 그 가치를 세워 보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겠다는 정신은 소중한 삶의 양식이 된다. 입시로 인해 아이들이 이런 배움과 고민의 순간 자체를 피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