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브oo를 이어준 열 편의 글쓰기

2019. 12. 24. 11:39Contents

9개월 동안 열 편의 방송 리뷰를 썼다. 때로는 하루만에 완성했고, 어쩔 때는 머리를 짜내며 꾸역꾸역 쓰느라 몇 날 며칠을 모니터만 바라보기도 했다. 예정대로라면 더 많은 글이 나왔어야 했지만, 목표와는 달리 몇 번은 글을 쓰지 못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브oo 서랍이 내 흑역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글을 다시 읽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뿌듯하게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보잘것없는 결과물일지라도, 끝까지 마무리 해낸 열 편의 작은 성취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올 한 해 잘 보낸 기분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M씽크x브oo 활동이 내게 남긴 큼지막한 선물 세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1. 향상된 메모 습관

퇴사 이후 글 쓸 환경을 찾아 다녔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어딘가 남기고, 차곡차곡 쌓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나 메모장에 휘갈긴 생각의 조각들을 끝맺지 못한 게 늘 아쉬웠다. 그래서 한 일중 하나가 브oo 작가 등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은 강제로 글을 쓰게 만들 조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알게 된 활동이 M씽크 청년시청자위원이다. 내가 선택한 방송을 보고 리뷰 글을 쓴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섣부른 판단이긴 했지만 아카데믹한 글쓰기가 아니어도 된다는 편안함도 있었다. 브oo 작가 등록이 되어있으면 선발에도 우대를 해준다는 공지를 보고 냅다 지원했다.

그런데 개인적 생각을 떠드는 수준의 글조차 엄청난 사전 작업이 필요한 일이었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기분은 생산적 글쓰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방송에 대한 생각을 재밌었다혹은 재미없었다이 두 가지로 얘기하는 건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게다가 방송 평가는 요즘 십대 친구들이 훨씬 신랄하게 잘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나만의 색깔과 기준을 갖추고 방송을 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밀한 메모 습관이 필요했다. 어떤 지점이 날 자극했는지, 내 생각을 바꾸었는지, 어디가 왜 아쉬웠는지 수시로 기록하면서 방송을 시청해야 했다. 그 전까지는 내 기분이나 인상 깊은 부분만 즉흥적으로 메모를 했다면, M씽크 활동 이후부터는 기획 의도나, 출연진, 메시지 등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좀 더 형식을 갖춘 메모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메모가 리뷰 글을 기한 내에 효율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업무(?) 방식이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습관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전반을 향상시켜 글 쓰는 속도를 높여주었다. 3기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팁은 방송을 일찍 보고 평소에 많은 방송과 자신의 경험을 엮은 메모를 쌓으라는 것이다. 글의 완성에 메모가 반 이상일 정도로 경험 상 효과적인 메모는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퀄리티는 차치하고 글을 빨리 쓴 날은 모두 평소 메모가 잘 된 것들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건, 대부분 평소에 한 메모가 별로 없거나 컨디션이 안 좋거나 둘 중 하나였다.

 

2. 글쓰기 두려움을 덜어주다

모르셨어요?’ 

 MBC 에디터님이 브oo 메인 페이지에 내 글이 게시된 화면을 캡쳐 하여 보내주셨다.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두 번의 브oo editor’s pick를 받게 된 것이다. M씽크 활동과 별도로 브oo 자체 에디터 분들이 추천한 글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섹션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글 두 편이 조회 수 2,000에 육박한 운 좋은 경험을 했다. 고백하자면 예능 <놀면 뭐하니?>를 보고 작성한 유재석에 대한 글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무척 심란해하며 쓴 것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글이 선택되어 처음에는 당황했다. 드라마 <어하루> 리뷰의 경우도 개인적 경험을 눌러쓴 글이라 공감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나 같은 초심자 에게는 매우 값진 일이었다.

나는 SNS에 두 줄 이상 글을 써 본적이 없다. 노래방도 혼코노(혼자가는 코인 노래방)를 더 좋아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강했다. 글을 저장해 놓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누군가가 내 글을 보는 게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기를 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글을 완성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브oo에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란 무엇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완성된 글을 올리는 것이다. 단순한 공식인데 글을 끝을 맺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마감이 없는 이상 몇 줄 끄적거리다 말기 십상이다. 브oo를 하면서 미완의 글은 어릴 적 방학숙제로 끝마친 일기장보다 못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당시 MBC 에디터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여러분들 처음엔 엄청 부족해 보여도 연말엔 분명히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에요. 어떤 식으로든요.’ 멋진 동기부여였다. 그런 친구들을 지난 일년 간 보았다는 말이 신뢰가 갔다. 그래서 처음 리뷰를 작성할 때에도 부담감을 많이 덜어 놓을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리뷰를 쓰고 브oo 픽(pick)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건 에디터님들의 이해심과 응원 덕분이다. M씽크는 브00라는 소통의 장을 내게 열어주었다.

 

3. 스스로에 대한 이해

주워들은 이야기다. 사람들이 심리 상담을 남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상담의 목적은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한다. 내용이 그럴 듯해 한때 주변 사람들에게 나만 모르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다닌 적이 있다. 당시엔 별 소득이 없었는데 글을 쓰면서 그 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방송 내용에 개인적 경험을 엮는 식의 글쓰기를 종종 했는데, 글을 다 써 놓고 보면 몰랐던 내가 눈 앞에 나타났다. 평소 보지 못했던 꽤나 긍정적인 모습을 글 속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묵은 감정을 글로 정리해 보는 과정은 내 기질과 가치관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쓰기는 타자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중 하나인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글을 완성한 사실 자체에 내가 상당한 만족감을 가진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감정의 해소가 되지 않아 불편한 기분을 늘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글을 써내려 가면 그런 엉킨 감정들이 풀리는 것이었다. 또 글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잠재된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게 대하지 마라는 주변의 조언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열 번의 작은 성공들은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자신감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 셈이다.

이제 M씽크 활동은 막을 내린다. 그 다음 글을 쓸 차례다. 큰 선물을 받은 이상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 잘할 자신은 없지만, 완성할 용기는 생겼다. 나는 브oo와 조금 더, 기왕이면 오래오래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도 나를 친절히 맞아주고, 서툰 고백에도 물개박수로 공감해준 M씽크 그리고 브oo 에디터님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