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에게도 희망이 있다 - MBC 신나는 로맨스, <호구의 연애> 리뷰

2019. 4. 16. 15:46Contents/예능

“우리 동호회에 가입할래요?”

  웬걸, 아직 저런 말에 설레다니. MBC 리얼 로맨스 버라이어티 <호구의 연애> 맛보기 영상이 날 사로잡았던 건 다름 아닌 저 한 마디였다. 동호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게 어찌 그리 설레던지. <호구의 연애>는 호구 왕을 자처하는 다섯 명의 예능인들이 일반인 여성 회원 네 명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대성리 엠티를 시작으로 현재 제주도 활동이 진행 중이다.


 설렘은 어떻게 솟아나는 걸까? 나는 해가 갈수록 ‘취향’이나 ‘공감 어린 배려’가 주는 감동이 강력해지는 것 같다. 동호회 모집이 다른 테마들보다 더 와 닿았던 것도 그런 가능성이 클 것 같아서다. 4회 차를 모두 시청한 결과, ‘호감 구혼자(호구)’의 연애는 확실히 덜 무거우면서 소소한 설렘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신났고, 유쾌했다.

 하지만 동시에 낡은 예능 분위기도 났다. 최근 연애 프로그램 동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느낌도 들었다. 기억에 남는 관전 포인트 세 가지와 개선점 두 가지를 함께 정리해 보았다.

 


관전 포인트: ①, ②, ③

 

진정한 호구왕은 박성광

 중간 인기투표 결과 1:1 데이트 기회를 얻은 행운의 주인공은 허경환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진정한 의미에서 호구 왕은 박성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표도 못 받은 비운의 사나이지만 호구로서 충실한 임무를 수행했다. 큰 웃음을 주어 예능 점수도 내 기준으로 1등이다. TV를 보는 내내 박성광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성광은 섬세하게 참가자들 정보를 외워왔지만, 시작부터 세온에게 선영이라 부르며 대참사를 겪는다. 대성리 MT에서는 짝 피구를 제안했지만, 정작 여성 회원에게 선택도 못 받고 심판이 된다. 어렵사리 게임에 참가했지만 바로 공에 맞아 탈락한다. 진실게임이 더 압권이다. 추워하는 지안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민규는 자신의 장갑을 건넨다. 그렇게 줄줄이 매너경쟁이 이어졌지만, 성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성광의 손에 들려 있던 건 다름 아닌 ‘빨간 목장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현실 웃음’이 빵 터졌다.

 잘 해주고 싶은데 상황도 여의치 않고 어딘지 모르게 푼수 같아 보이는 것. 이런 게 진정한 ‘호감 구혼자’로서 애절한 모습 아닌가? 그래도 성광의 진심을 알아주는 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세련된 매너보다 어색해도 순수한 마음이 때론 더 멋져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의 양세찬이 말했던 것처럼,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성광의 목장갑에 환호할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된다.

 

유토피아 비주얼, 박민규 & 채지안 커플

 지안과 민규는 가장 이상적인 비주얼을 선사(?)한다. 연상연하 커플이라 더 예쁘게 보이는 건 나만의 착시일까? 어찌 되었건 안구정화라는 표현이 딱 맞다. 연애할 때는 상대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 지안과 민규가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도 그렇다. 충만하다. 이 둘을 통해 나는 핑크 빛 기류를 전해 받고 흐뭇한 기분을 느꼈다. 이쯤 되면 대리만족인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CF인가, 화보 촬영인가 하면서.

 

깨알 재미, 호구의 전당

 감스트, 윤형빈, 유재필의 깨알 같은 해설도 꽤 재밌는 볼거리다. B급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튜브에 있는 감스트의 <호구의 전당> 번외 편을 추천한다. 친구들과 골방에 모여 함께 수다 떠는 것 같이 친근하다. 호구 출연자들이 ‘을’이라면 이 셋은 ‘병’ 정도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방송을 지켜보는 내내 우리도 저기 보내 달라며 아우성친다. 남의 연애 지켜보는 호구들의 반응이 리얼하다.

 


개선점: ①, ②

① 예능과 현실 사이

 사람들이 로맨스 예능에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현실 같은 로맨스’ 일 것이다. 재밌는 예능은 많으니까. 선영의 말처럼 <호구의 연애>가 예능적 요소에만 너무 기울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출연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구성이 낡아 어색했다. 짝 피구나 폐가 체험 등은 감정의 발전을 위한 활동보다는 예능적 요소에 쏠린 듯한 구성과 내용이었다. 현실 로맨스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MT에서 하루 만에 진실게임을 한 것과 제주도에서 갑작스러운 먹는 방송 장면 두 가지가 아쉬웠다. 사실 요즘 여행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웬만해선 다들 직접 여행을 떠나버린다. 맛집, 가면 된다. ‘리얼리티 연애’라는 목적을 살리려면 그에 맞는 적절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첫 진실게임은 어색한 감정교류라는 느낌만 들었다. 예능으로서 차별화된 지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주도 음식 촬영 장면도 프로그램 성격을 헷갈리게 했다. 더 짧게 잡아도 충분했을 것 같다.

 때로는 별것 아닌 사건이 사랑의 감정을 싹 틔워 주기도 한다. <테라스 하우스>라는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를 인상 깊게 봤다. 드라마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세탁기 앞에서 둘만 나눈 대화, 밤 운동을 하며 열게 된 마음의 문은 사실 상당히 사소한 계기로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설렘은 이런 소소한 장치로도 가능하다. 감정의 포착만으로도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행동과 결정에 충분한 설득력을 주었다. <호구의 연애>에서도 관찰 예능까진 아니더라도 출연자의 사실적인 감정 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

 

② 단체행동 말고 개인행동하게 해 주세요

 그렇다면 그런 감정선을 어떻게 포착하느냐가 다음 질문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디테일에 감동한다. 그래야 집중해서 본다. <호구의 연애>에서도 사적인 공간에서 감정이 살았던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 ‘그래 이거지!’ 하면서 가장 설렜던 건 바로 세찬과 윤미의 성산 일출봉 ‘해맞이’였다. 애초에 이 조합은 예정에 없던 것이다. 세찬은 벌칙으로 혼자 일출을 보러 가야 했다. 그런데 세찬을 선택하지 않았던 윤미가 새벽부터 나타나 세찬에게 동행을 제안한 것이다. 일출을 보고 싶었다면서 윤미는 의아해하는 세찬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둘은 그렇게 제주도의 일출을 맞이한다.

 단체 행동만으로 두 사람의 감정이 깊어지기는 어렵다. 세세한 장면을 모두 마크하기엔 현장의 제약들이 분명 있겠지만, 시청자를 설레게 할 장면은 윤미 같은 개별행동일 것이다. 이를 더 장려하면 좋겠다. 개인 담소를 나눌 방법이 1:1 데이트나 이동할 때 차량뿐이라면 겉도는 대화만 지속할 것이다. 동호회에 참가하는 시간이 제한된 점을 강조해 더 분주한 호구들의 모습을 담아도 좋을 것 같다. 세찬과 윤미가 보여준 해맞이가 어쩌면 <호구의 연애>가 진화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맘 편한 연애를 하기엔 참 팍팍한 세상이다. 호구 같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호구가 된다. 피할 수 없다면, 호구를 찬양하는 게 우리의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나는 <호구의 연애>가 호감 구혼자들을 아낌없이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호구의 연애> 존재 이유이자 기존 관찰형 연애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지점이라 생각한다. 호구의 사랑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호구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성광이 성공적 연애를 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