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4. 01:03ㆍContents/시사보도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리뷰
인터넷에서 ‘요즘 10대 청년들 말투’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포털 사이트 댓글을 캡처한 것인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나 10대 청년인데 동년배들 다 XXX이 싫어한다’, ‘말세로구나.. 전남 여고딩인데 XXX 좋게 생각하는 애들 별로 없다’, ‘청년인데 요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있읍니다’... 모두 자신이 ‘청년’ 임을 강조하면서 특정인을 비난하는 레퍼토리다. 네티즌들은 이것이 진짜 ‘청년’의 댓글이라고 믿지 않는다. 10대가 절대 쓰지 않을 말투는 온라인상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이렇게 어설픈 조작은 그 누구도 속이지 못한다. 그런데 가짜뉴스는 다르다. 가짜뉴스는 좀 더 ‘그럴 듯’해서 치밀하다. ‘기사’의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내용의 절반 가량은 진실에 가깝다. 왜곡을 아주 살짝 첨가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치명적인 거짓이 탄생한다.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시대. 주요 언론은 뉴스와 지면 코너를 통해 나름의 팩트체크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파일럿으로 처음 등장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또한 그중 하나다. 차이가 있다면 <당.믿.페>는 ‘발로 뛰는 팩트체크’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직접 취재하고, 당사자를 찾아 질문하며 사실 추적의 과정을 낱낱이 공개한다. M씽크 4월 테마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김재영 PD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젊은 시사 프로그램의 등장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첫인상은 젊다. ‘카카오톡’이나 웹 브라우저 이미지를 활용해 우리가 가짜뉴스를 접하게 되는 과정을 재연한다. 매주 선정되는 가짜뉴스는 2030 커뮤니티를 한 번쯤 시끌벅적하게 한 ‘핫한’ 소재들이다. 진행자도 언론인이 아닌 연예인이다. 김재영 PD로부터 진행자 김지훈 씨 캐스팅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지훈 씨는 지난 촛불시위에 가장 많이 참석한 연예인 중 한 명이라고 한다. 해커를 연상케 하는 ‘서처 K’ 콘셉트는 김지훈 씨가 직접 제안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인터넷∙모바일 이용률이 높다. 가짜 정보에 그만큼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젊은 시사프로그램 <당.믿.페>가 그래서 반갑다. 이것은 사실일까, 이 뉴스의 출처는 어딜까. 서처 K의 질문은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무엇인지 우리는 <당.믿.페>를 통해 조금은 체득할 수 있다.
당신이 믿었던 언론
가짜뉴스를 만드는 것은 자기 정치적 의견을 고수하려는 ‘특정 세력’ 뿐만이 아니다. 언론도 가짜뉴스 생산에 가담한다. 언론이 자신의 본분인 ‘사실 확인’을 잊었을 때 가짜뉴스는 더욱 힘을 받고 생산∙유포된다. 여기서 언론은 생각보다 더 무책임했다. '본인 확인'만 했어도 바로 잡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았다. <당.믿.페>가 저격하는 것은 가짜뉴스의 사실여부뿐만이 아니다. 가짜뉴스의 최초 유포처, 그리고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퍼뜨린 언론까지, 진실 왜곡에 가담한 모든 이들을 쫓는다. <당.믿.페>는 시청자들에게는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착한 프로그램이지만, 언론인들에게는 ‘반성’을 당부하는 엄격한 프로그램이다.
물론 MBC라고 예외는 없다. 잘못된 뉴스가 MBC를 통해 전해졌다면 그 또한 당.믿.페>의 저격 대상이 된다. <당.믿.페>의 사실 검증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가짜뉴스 피해자들은 지금
나 또한 가짜뉴스를 믿고 있었다. ‘세월호 괴담녀’ 홍가혜 씨에 대한 악성 루머가 그렇다. 2014년 당시 나는 그가 특정 정치세력을 대변하기 위해 등장한 ‘허언증’ 환자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그의 발언이 사실로 밝혀지고 그가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도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기기만 했다. 나는 2014년 이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당.믿.페>에서는 그가 몇 년 간 얼마나 큰 모욕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조명했다. 난민, 새터민들, 황교익 씨. 가짜뉴스의 당사자이자 가짜뉴스로 인해 삶의 일부가 망가져 버린 이들이다. <당.믿.페>는 이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당.믿.페>가 다루는 가짜뉴스가 매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뉴스를 다루기도 한다. 시간이 지난 사안을 굳이 지금 다루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슈가 이슈를 덮는 세상에서 지난 일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싶었다’는 것이 김재영 PD의 생각이다. 가짜뉴스를 믿고 피해자를 잊은 나를 반성하게 하는 대답이었다.
아쉬운 접근성
가짜뉴스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정보를 더 많이 생성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imbc 공식 채널과 유료 플랫폼에서만 제공되는 <당.믿.페>의 접근성은 상당히 아쉽다. 5분 클립 영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구독자가 3만 명에 불과한 ‘다큐하우스’ 채널에만 업로드되고 있어 조회수가 낮고 노출 빈도가 적다. 특정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진실’이 상위 목록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접근성이 필요하다. 4회에 그치는 짧은 방송과 ‘시즌제’인 점도 아쉽다. 가짜뉴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성된다. 그만큼 발 빠른 팩트체크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4월 29일 4회를 끝으로 시즌 1을 마무리했다. 시즌 2는 6월에 돌아온다고 한다. 그동안 파일럿 1, 2화부터 <당.믿.페>를 정주행 할 것을 추천한다. 부동산, 조덕제 성추행 사건 등 궁금증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을 다루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내가 믿는 정보는 진실이며, 팩트체크 따위는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믿.페>를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거짓에 노출되는 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일일이 사실 확인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뉴스가 매일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 거짓과 싸워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다음 시즌과 프로그램의 '롱런'을 기대하는 이유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다시보기 :
http://www.imbc.com/broad/tv/culture/fake/vod/
<당.믿.페> 5분 정리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UyyyYLJbPdjymxfg5StK-WFn-okOfY7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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