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 평화로운 연애의 지름길

2019. 8. 30. 13:01Contents/예능

연애 중 갈등이 생긴 친구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 상담 전문가도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싸움의 핵심은 대체로 한쪽에서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해 더 큰 오해로 번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얘기를 듣는다 함은 완전한 너의 편이 되어주겠다는 적극적 결의를 보여주는 제스처를 말한다. 만약 그(그녀)가 직장상사의 부당한 지시로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면 당신은 상사의 부당함 집중해야 한다. 일이 왜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결할지는 어차피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고 제대로 돕기도 어렵다. 팩트에 집중하는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고민타파의 포인트는 편애다. 논리적으로 수습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나는 이유 불문하고 사람 편부터 들어주라 한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한다는 것. 편애의 사전적 정의다. 그만큼 편애한다는 건 상대방의 마음에 굉장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일이다. 행복한 차별이라고 할까? 이번 MBC에서 기획한 <편애 중계>도 정확히 그런 편애가 주는 행복감을 노린 것 같다. 더군다나 농구, 축구, 야구계의 대표 스타로 구성된 스포츠 레전드 해설위원들이 누군가를 편들어 준다고? 더욱 달콤한 제안이다. 일반인들을 자신의 선수로 정해 놓고, 그들의 도전을 편애하며 중계한다는 컨셉은 초반부터 극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편애의 기술 1: 올바른 미팅 준비 법

지난주 <편애 중계> 1화는 거제도 섬 총각 3인방을 소개했다. 모두 싱글남으로 삼 대 삼 미팅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들의 평소 모습을 소개하고 미팅 출격 전까지의 준비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중계진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자신들이 맡게 될 선수들을 해설하기 시작했다. 타 예능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느낀 지점은 출연진들이 서로를 헐뜯기보다 (선수들의) 폭풍 칭찬을 더 많이 늘어놓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편애 자체가 주가 되는 프로그램은 없었던 것 같아 신선했다.

 

특히 첫 번째 선수로 나온 이정호는 카리스마 있는 풍채와는 달리 목소리가 앙증맞아 등장부터 해설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런데도 김병현이나 안정환은 그의 순수함을 응원하며 자신의 선수가 되길 원했다. 중계팀이 정해지기도 전부터 누군가의 장점부터 찾고 거기에 꽂히는 건 편애라는 목적의식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출연자의 장점만 보이는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미팅도 그렇게 준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장점만 보라는 말은 당위적으로 들리기만 하고 실제론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도 단점이 보이면 마음이 식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산유수로 터져 나오는 편애 중계진의 칭찬행렬을 본받을 수만 있다면 어떤 미팅이든 성공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편애의 기술 2: 당신의 연애 센스지수는?

바보 같은 생각도,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러운 내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이 응원해주면 한순간에 스스로가 멋지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세 번째 선수인 천덕주는 주변에서 한 가창력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가 노래방에서 홀로 노래 부르는 모습은 딱히 이성에게 어필할 만한 매력 포인트 라기보다 아련한 분위기만 자아냈다. 이를 프로그램은 요즘 인기 많은 흥생흥사 스타일이라 자막에 표현하던지, 안정환의 경우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포장했다. 그 모습이 나는 노련하면서도 센스 있게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런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인정 못 해도, 나에게만은 참 특별하단 메시지를 주는 게 소위 말해 연애 센스 핵심이다. 모자라는 부분도 장점으로 승화하는 열띤 편애의 자세는 우리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해 줄 수 있다.

 

편애의 기술 3: 열심히 말고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인 만큼 정규 편성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프로그램의 재미가 해설자의 입담에 전적으로 달렸다는 점이 약간은 우려된다. 물론 김성주부터 서장훈, 김제동 등 요즘 예능계의 핫한 들이 한자리에 모였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근거 없는 편애도 한계가 있는 법. 이효신 출연자의 현관에 2~30대 젊은 층이 많이 신는 패션 운동화가 놓여있었는데, 서장훈이 패션에 신경을 쓰신다고 칭찬을 하는 장면에서 어색함이 감돌았다. 서장훈이 순간 신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게 된 것이다. 칭찬에 진심을 담을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연하는 일반인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시청자들도 출연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냥 편들어 주는 것은 초반에만 반짝 재밌고 금방 식어버릴 수가 있다. 연애도 다를 게 없다. 그저 기계적으로 말이 다 맞아 하면, 상대는 또 서운할 수밖에 없다. 김제동이 이효신의 색안경을 트렌디한 뿔테로 바꿔준 것처럼 발전적 계기는 마련하는 게 좋다. 따듯한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돼야 없던 입담도 생기고 영혼 없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지난한 사랑싸움에서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에는 상대가 내 억울한 얘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할 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사랑하는 사이에 알량한 자존심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다가, 또 그 자존심에 목숨을 걸고 별것도 아닌 일을 부풀려 눈물 콧물 다 짜내고는 했다. 몇 번을 그러고 나니 그냥 처음부터 위로를 요구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 상한 일이 있을 때면 지금 속상해서 그런 거니까 그냥 무조건 내 편 들어줘 말하는 요령(?)이 생겼다. 내 연애 전선은 그때부터 훨씬 평화로워졌다. 편파적이고 치우친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문제에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말자. 편들어 줄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편애 중계>처럼 만들어서라도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로해 주자. 사랑은 합법적인 편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