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3. 09:13ㆍContents/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리뷰
이 드라마 정말 재밌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명작이라는 수식은 너무 거창하고 무거워 보여서 어울리지 않는다. 상큼하고, 경쾌하고, 발랄하고, 따뜻하기까지 한 이 작품에는 ‘띵작’이라는 급식체가 제일 어울린다.
사실 10대부터 학원 로맨스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입시에 시달리던 내게 로맨스는 판타지 소설보다 더 판타지 같은 이야기였다. 학교에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여학생도, 남학생도 없었다. 핑크빛이 가득한 드라마에 내 칙칙한 청소년기가 도드라져 보일까 나는 일부러 학원 로맨스를 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10대들이 교복 입고 알콩달콩 사랑놀이를 하는 드라마에 푹 빠지고 만 거다.
# 엑스트란데 뭐 어쩌라고?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이 세트장을 나가는 것이라면,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세트장을 부수는 것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단오는 자신이 순정만화 속 캐릭터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 만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엑스트라라고 뒤로 빠져 있지 않는다. 온 세상의 관심이 여주와 남주에게 몰려있어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조명과 특수효과가 그들만을 비춰도 어떻게든 시선을 받으려고 난리를 친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설정대로 움직이면서도 속으로는 그것이 ‘구리다’고 신명 나게 외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아주 뻔한 메시지를 작가의 설정을 부수는 단오의 모습으로 통쾌하게 전하는 것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 신선한 소재와 드라마의 화룡점정, 연출
‘만화 속 캐릭터가 어느 날 자신이 만화 속 인물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설정 한 문장만 봐도 벌써 재밌다. 그런데 연출은 더 재밌다. 이게 드라만지 만환지 정말로 구분이 안 되는 공이 팍팍 들어간 연출이 재미를 배로 만든다. 자신이 캐릭터임을 인식한 장면을 보고는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영상으로 2D와 3D를 동시에 구현한 연출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만화 같은 특수효과를 넣어도 촌스럽지가 않다. 드라마의 상황과 분위기에 맞게, 그리고 화면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효과가 등장한다. ‘2019년의 드라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포스가 넘치는 화면들이다.
<화제의 1분> “내가 엑스트라 였어?”…자신의 역할 알게 된 단오
# 그리고 김혜윤
서울의대를 꼭 가야겠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던 그때 그 학생이 맞나, 내 눈을 의심했다. 배우 김혜윤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완전히 자기의 무대로 만들었다. 학원 로맨스물에서 ‘여성 원탑’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보통은 멋있는 남자 주인공과 더 멋있어서 마음이 짠한 서브남주의 ‘심쿵’ 화면으로 극을 장식하기 마련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극의 대부분을 김혜윤의 연기로 끌고 간다. 또랑또랑한 발성, 귀에 꽂히는 딕션, 백만 가지 표정과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액션(?). 만화 속 인물을 정말 화면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김혜윤의 썩은 미소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 김혜윤의 연기는 로맨스물이 남자에게만 멋있음을 몰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앞으로 있을 학원 로맨스물과 배우 김혜윤 양쪽 모두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 드라마 왕국, 돌아온 것을 환영해!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MBC 드라마는 사극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웅장한 스케일과 굵직한 서사를 자랑하던 MBC 드라마가 이런 발랄한 작품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들을 유입시키고 있다. 웹으로 옮겨갔다고 생각한 1020 저격 드라마가 새로운 복병이 됐다.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갈등구조나, 눈살 찌푸려지는 장면 하나 없는 것은 MBC가 트렌드를 충분히 읽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어쩌다 발견한 하루>가 MBC 드라마왕국의 제2막의 문을 열었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시청자들은 어느 때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요일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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