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TV에서 착한 프로그램을 보기가 힘들까

2020. 1. 11. 05:46Contents/교양

 

지난 6월, 나는 <시골 주치의 프로젝트 왕진 원정대>라는 아주 따뜻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칭찬하는 글을 썼다. 안타깝게도 프로그램은 내가 그 글을 업로드 한지 보름여 뒤 12회의 짧은 방영 후 종영했다. 아마도 시청률과 인기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이 프로그램이 정말 많은 어르신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며 생각보다 재밌는 구석이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일오전 6시 10분이라는 방영시간을 조정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왕진 원정대>의 4개월 여정은 결국 일요일 이른 아침에 끝이 나고 말았다. 사실 <왕진 원정대>를 칭찬했던 나조차 프로그램을 챙겨보기에는 방영 시간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어르신들이야 아침 일찍 눈 뜨는 일이 많다지만 좀 더 젊은 세대에게 이 프로그램이 많이 노출되었다면 ‘의료사각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기 편성이 안타까운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우리 동네 피터팬>이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M싱크를 지원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좋은 프로그램을 더 알리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M씽크를 지원서에 썼던 <우리동네 피터팬>의 좋은 점 몇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우리동네 피터팬>은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편견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를 아주 탁월하게 지켜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장애인의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주며, 억지로 감동 코드를 만들어 눈물을 쥐어 짜내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 열정적인 프로페셔널 장애인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모른 체한 이들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장애를 ‘극복’ 해야 한다는 무례한 시선보다는 장애를 가지고도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사회의 시선을 바꿔 놓으려는 것이 <우리동네 피터팬>의 시도다.  

 

역시나 아쉬운 것은 편성 시간이다. 목요일 낮 12시 20분. 적어도 학교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가정주부들이나 집에 있는 어르신들이 리모컨을 쥐고 있을 텐데 그리도 <피터팬>의 편성은 불리하다. 같은 시간 타 방송사에서는 정오 뉴스가 방영되거나 일일드라마 재방송을 한다. 뉴스와는 비슷한 시청률을 낼 수 있다고 해도 고정 시청층이 두터운 일일드라마를 이기기는 쉽지가 않다. 대중적이지 않은 시간대에, 막강한 경쟁자까지 두고 있다면 <피터팬>에 더 많은 시청자를 유입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편성시간을 옮기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를 유입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방법은 유튜브다. MBC 다큐하우스 채널이나'오분 순삭'과 같은 콘텐츠를 통해<우리동네 피터팬>을 홍보하는 것이다. 편성 시간이 별도로 없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동네 피터팬>과 만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예능 요소를 살려 짧은 시간대로 편집하면 사람들이 부담 없이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유튜브 유저들은 낯선 것에 친화적이다.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불행한' 장애인, '극복하려는' 장애인이 아니라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실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좋은 창구가 될 것이다.  

 

한때 ‘요즘 좋은 프로그램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막장 드라마나 짓궂은 예능이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니 좋은 프로그램은 없는 게 아니라 숨겨져 있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에 밀려 사람들이 별로 TV를 찾지 않는 시간대로 말이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경쟁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디어의 의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을 알리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MBC의 좋은 프로그램 숨기기가 아쉽다. <왕진원정대>처럼 <피터팬> 또한 조용히 문을 닫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대에 착한 프로그램들이 배치되기를 바란다. 종영된 <왕진원정대>도 방영 중인 <우리동네 피터팬>도 착한 것 이상의 재미도 분명 있었다. 많은 사람 앞에 이 프로그램이 설 수 있을 때, 프로그램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