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민족이 친해지는 방법

2020. 6. 23. 12:27Contents/드라마

밥의 민족

안부는 “밥은 먹고 다니니?”라 묻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겐 “밥맛 없다”라고 말하지만, 감사함은 “밥 한 번 살게”로 표하고,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는 동료는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되고, 기약 없는 약속에서 조차 “밥 한 번 먹자”라는 예의를 차리며, DJ DOC는 젓가락질에 능하지 못해 “밥상에 불만 있냐?”라는 소리까지 듣게 하는 민족. 이제는 한국인은 밥밥디라라족 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지경이다. 역시나 우린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나는 ‘밥생밥사‘, 밥의 민족이었다.     

 

밥생밥사

여기도 밥에 죽고 사는 운명들이 있다. 김해경(송승헌)과 우도희(서지혜)는 밥의 민족다운 처세로 점차 인연을 만들어 나간다.      

  

1. 푸드 트럭 컵 밥

 

주꾸미 & 흑돼지 컵 밥을 함께하는 첫 저녁 식사 / 사진=저녁 같이 드실래요 3화

 

조금 특이한 푸드 테라피로 음식과 식사자리를 통해 의뢰인의 멘탈을 살피고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김해경은 과거에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밥 먹을 생각이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우도희의 시련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던 그녀와 기꺼이 첫 저녁을 함께 하게 된다. 그렇게 함께 먹게 된 푸드 트럭 컵 밥. 컵 밥을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라 여기지 않았던 그는 그녀의 메뉴 선정을 탐탁지 않아하다가도 흑돼지 컵 밥을 고르며 자연스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평소 사적으로 누군가와 밥을 먹지 않는다는 김해경의 인물 설정을 가볍게 패스하는 전개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는 밥의 민족이었음을 간과하지 말자. 아마 첫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밥의 민족 해경이가 같은 사랑의 아픔을 갖게 될 도희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 방식이었을 것이다.      

 

사실 과거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밥 먹을 생각이 없어.”라는 말 뒤에 덧붙인 “그래도 굳이 먹는다면 아마 그 사람 편이 돼주고 싶어서 일거야.”라는 그의 속내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편이 돼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2. 노량진 컵 밥

또 다른 밥의 민족, 도희는 “너랑 밥 먹기가 싫어졌어”라는 전 남자 친구의 무자비한 말에 너덜너덜 해진 마음을 해경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로 “밥을 사겠다” 제안하지만 해경은 갓 발매된 태진아 음원이 1위를 하는 순간 밥을 먹겠다며 에둘러 거절한다. 이에 도희는 밥의 민족의 인사치레를 알아차리곤 그의 어이없는 완곡함에 분노한다. 아 이 얼마나 밥의 민족다운 전개인가.  

 

달에 취한 도희와 컵 밥에 취한 해경 / 사진=저녁 같이 드실래요 5화

 

하지만 음원차트 해킹으로 우연하게 1위를 차지한 태진아. 이를 계기로 지난번 컵 밥에 이어 둘은 또다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이번에도 메뉴는 컵 밥. 감사함의 보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컵 밥 대접에 불만을 내비치던 해경은 컵 밥 한 입 후, 생각보다 훌륭한 맛과 눈앞에 펼쳐진 환한 야경에 빠져든다. 컵 밥을 사랑하는 도희와 컵 밥은 한 끼 식사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해경이 서로 한 층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3. 스테이크         

스테이크를 모시고 있는 해경과 벌써 먹기 바쁜 도희 / 사진=저녁 같이 드실래요 7회

 

거듭되는 운명적인 만남으로 또다시 저녁 식사를 하게 된 도희와 해경. 이전과는 상반된 메뉴와 식당 분위기에 둘의 성향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해경은 스테이크 앞에서 향을 음미하고 음식에 단계적으로 다가가지만, 도희는 그저 배를 채워줄 고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너무나 다른 둘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에 어느 정도의 이해가 들어차는 관계가 된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밥에만 집중하던 첫 번째, 두 번째와는 달리 거리낌 없이 사적인 고민들을 공유하며 세 번째 식사 자리를 채워가는 둘이다.      

 

 

4. 삼겹살

정식으로 디너 메이트가 된 둘은 어느 밥의 민족에게나 익숙한 삼겹살로 네 번째 식사를 함께한다. 해경은 이제 도희가 음식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도 기다려주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겼다. 심지어는 도희의 식사 과정을 관찰하며 쌈을 따라 싸 보기까지 한다. 삼겹살이라는 보편적 메뉴가 주는 편안함 덕분인지 두 사람의 관계도 한 층 더 편안해 보인다.

쌈 싸는 도희를 따라 해 보는 해경 / 사진=저녁 같이 드실래요 10회

 

첫사랑의 갑작스러운 구호 요청에 삼겹살과 소주, 도희를 두고 달려 나가 버리는 해경이지만 이내 삼겹살집으로 다시 돌아와 술에 취한 도희를 챙기는 해경은 더 이상 그녀가 불편하지 않은 듯하다.      

 

 

식(食) 구(口)가 되는 거니?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식(食)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각자 일상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어쩌면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닌 함께 하는 사람의 인생이 함께 오는 것. 이런 이유에서 밥의 민족은 대부분의 끼니를 함께 하는 가족을 밥 식(食)에 입 구(口), ‘식구’라 부르기도 한다.      

둘은 단순히 밥을 먹기 위해 만났지만 밥을 먹다 자연스레 오가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 안에서 퍼져가는 감정의 기류가 드라마를 참 맛있게 한다. 그들의 식사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때로는 우리의 인생처럼 달다가도 맵고, 짜다가도 싱겁고, 쓰다가도 향기롭다.     

 

저녁, 하루의 마무리가 되는 식사. 밥의 민족에게 저녁 한 끼의 동행으로 아직 식구라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하루의 마무리를 서로에게 맡기는 도희와 해경에게 강한 식구의 냄새가 풍겨온다. 그럼에도 둘은 그저 디너 메이트 일지, 곧 서로를 식구(食口)로 대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닐지 다음 저녁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그럼 우리도 도희와 해경이의 디너 메이트가 되어 끼니를 때워볼까? 

월화 저녁 9시 30분쯤 저녁 같이 드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