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포스터의 상관관계

2019. 12. 29. 01:22Contents/드라마

드라마와 포스터의 상관관계

<하자있는 인간들> 포스터 분해해보기

 

 

말했다시피 나는 의류학도였고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볼 때면 자꾸만 배우들이 입은 옷, 착용한 액세서리, 걷는 폼처럼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에 눈이 간다. #오연서_운동화라든지 #김슬기_원피스 같은 검색어가 다 나 같은 사람 덕분에 탄생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런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컷의 사진이 있었으니 바로 <하자있는 인간들> 캐릭터 포스터다. 메인 포스터보다 밝고 발랄한 게 특징이다. 이 5인 5색 캐릭터 포스터를 분해해 내 맘대로 드라마를 해석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하자있는 인간들> 캐릭터 포스터에는 다 의미가 있음. 기대하시라.

 

<하자있는 인간들> 메인 포스터

 

아이컨택과 동시에 오분 순삭, 오연서 X 안재현 X 구원

그냥 예쁨이 다했다. 저 핑크빛 테를 자랑하는 안경과 귀여운 입술 삐죽 표정, 그리고 얼굴이 아니라 제발 손바닥이 큰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는 포즈. 배경으로 속 시원한 푸른 바다색까지. 완벽하다. 예쁘고 아름답다는 말만 하려면 이 글은 애초에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쁜 건 당연하고, 그 속에 숨겨진 재미난 드라마 설정을 찾아보자.

 

<하자있는 인간들> 포스터를 볼 때는 인스타그램 사람 태그 모양에 무슨 글귀가 새겨져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해당 캐릭터가 가진 ‘편견’이 무엇인지, 포스터에서 강조하고 싶어 사용한 ‘소품’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쉽다. 주서연(배우 오연서)은 hate_pretty_boy라는 문구와 함께 특징적인 소품으로 색안경을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벌써 눈치 챈 사람, 똑똑해~ 주서연은 얼굴을 믿지 않는 캐릭터다. 꽃미남이라면 일단 의심하고 보는 철저한 꽃미남 혐오증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가 알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기가 만들어낸 편견에 갇혀 소중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주서연은 그런 우리의 실수를 대표한다.

 

이제 연습 게임이 끝났으니 실전으로 돌입해보자. 이강우(배우 안재현)는 어떤 소품이 눈에 들어오나? (거울) 정답. 첫사랑에게 얼평(얼굴 평가)을 받고 고백을 거절 받은 경험이 있는 이강우는, 심각한 외모 집착증에 시달린다. 열심히 살을 빼고 근육을 만들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사랑하기에 이른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다. 그래서 문구로 i’m_so_beautiful이 떠있다. 드라마적으로 빚어진 극과 극의 두 캐릭터가 만난다는 딜레마가 <하자있는 인간들>의 시작점이다.

 

색채 공부를 할 때 보색 관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대조적인 성격 때문에 물과 기름처럼 어색해 보이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보색이 트렌드라고. (그 ‘요즘’이 2014년이었다는 것은... 슬픈 사실) 톤만 잘 맞춰주면 보색관계의 색은 서로를 뚜렷하게 보이게 만들어 인상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주서연과 이강우의 포스터 색은 각각 파랑과 노랑으로 보색 관계에 있는 색상이다. 어울릴 듯 말듯하면서 두 캐릭터도 결국 조화롭게 섞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자연히 ‘그럼 삼각관계를 이룰 나머지 한 명은?’이라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입에 꽃을 문 남자 이민혁(배우 구원)이다. 부드러운 톤 덕분에 선해 보이는 이민혁은 I_cannot_lie라는 문구만 봐도 캐릭터 설정을 한 방에 이해할 수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꽃이라는 비유, 거짓말하지 못하는 거짓말하지 않는 캐릭터다. 주서연과 이강우 사이에서 참말만 하는 이민혁이 어떤 역할을 해낼지 궁금해진다. (4화까지 본 소감: 네, 사랑합니다)

 

 

찰떡 콤비인데 상극이야, 김슬기 X 허정민

<하자있는 인간들> 캐스팅을 보고 사실 가장 보고 싶었던 배우는 김슬기였다. 톡톡 튀는 강렬한 인상에 귀여움을 갖춘 생활연기의 달인. 김슬기의 변신을 기대하며 리모컨을 들었다. 김미경(배우 김슬기)은 선생님이라는 직업과는 달리 영 앤 리치(Young&Rich) 게다가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배우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 캐릭터다. 소개만 들으면 비호감일 것 같지만 생각 외로 귀엽고 마음이 가는 캐릭터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왜 내가 저기 있나’ 했던 분 손 드세요~ SNS 업로드용 사진을 찍기 위해 화장하고 주렁주렁 꽃 귀걸이를 걸고 하늘하늘 니트까지 입었지만, 아래는 사진에 나오지 않으니 후줄근한 호피무늬 바지를 입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살면서 속으로 한 번은 바라봤던 욕망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드러내는 캐릭터라 약간은 양심에 찔리기도 하지만 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피식 나는 현실감 있는 캐릭터라고 감히 소개해보겠다. 그녀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보석 반지를 위해 find_rich_husband 중이다.

 

그녀의 짝이 될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상대역은 허정민이 맡았다. 박현수(배우 허정민)는 i_love_money라며 돈을 입에 물고 있다. 포즈에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진짜 돈인지 아닌지 이빨로 앙 물어 확인하려는 듯 보인다. 연예기획사 사장답게 돈 되는 일에 눈이 밝고 수익을 내지 못할 것 같은 일에는 가차 없다. 그런 그가 약한 게 있다면 아마 솔직함 아닐까. 김미경이 하필 박현수 앞에서만 ‘나 속물이오~’하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 둘은 천생연분이 될 듯하다.

 

마찬가지로 빨강과 초록이 보색 관계인 것은 안 비밀. 이후 김미경이 박현수의 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보자. 꽤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중간 중간 박현수가 사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림새로 등장하는데, 연기력으로 모든 걸 소화해버리는 배우 허정민의 연기력도 주목해볼 만하다.

 

 

 

 


<하자있는 인간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 인상 깊었던 질문이다. So, what?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주제가 뭐야? 아직은 똥 이야기에 묻혀 주제가 흐릿한 듯하다. 캐릭터 소개가 나왔을 때부터 주의 깊게 보았던 주서연의 둘째 오빠 주원석(배우 차인하)의 동성애 이야기도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고 똑 부러지는 멘트에 실력까지 겸비한 이강희(배우 황우슬혜)의 속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제의식이 아직 흐릿하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사전제작드라마답게 캐릭터 설정이 탄탄하고 제작과정 역시 순탄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도 보도되었던 ‘과로’, ‘25시간 근무’ 등의 키워드가 <하자있는 인간들>에는 붙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작가 안신유는 등장인물이 복작복작 많은 만큼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여러 인물을 그려냈는데 그들이 모두 편견 속에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라,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애틋한 드라마였다. 나 역시 작든 크든 누군가의 어떤 편견 속에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뚜렷하게 보이는 악역이 없다는 점이 힌트가 되었다. 저마다의 오해가 쌓여 있지만 나쁘게 그려지지 않아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 착한 드라마로 마지막 화까지 그려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