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_ _로 음악 듣기

2021. 9. 24. 20:35Contents/라디오

썰은 내가 풀게. 선곡은 누가 할래?

 

 요즘 플레이리스트가 유행이다. 그것도 유튜브에서 말이다. 익명의 ‘플레이리스트 유튜버’들이 각자 선곡한 곡들을 엮어 하나의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내고 있고,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을 듣는 사람이 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유튜브가 전문 음악 감상 플랫폼을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콘텐츠진흥원의 조사인 ‘2020 음악 산업백서’에 따르면, 응답자 58퍼센트 이상이 유튜브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고 말했다. 유튜브 뮤직을 더하지 않은 수치만 해도 이 정도이다. 아마 ‘플레이리스트’ 콘텐츠 이용자들이 꽤 된다는 것 아닐까 싶다.

출처: 한국 콘텐츠진흥원 <2020 음악 산업백서>

 플레이리스트의 인기 이유는 무엇일까? 유료 음악 구독 플랫폼에 비해 유튜브는 무료라는 것, 음악에 맞는 영상이나 간단한 이미지들이라도 제공하기에 감상을 더 극대화한다는 것도 메리트이다. 이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요즘 유튜브에서 빠질 수 없는 댓글 문화까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플리의 유행에서는 언뜻 보아도 매력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문인 건, 그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가 누구일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플리 세계에서 음악에 대한 전문성, 관련성이 있는 사람의 선곡일지는 중요치 않다. 콘텐츠 특성상 정체가 드러날 이유도 없다.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플레이리스트에 유입되는 걸까? 익명의 존재가 골라주는 음악을 믿고 귀를 선뜻 맡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새로웠다.

 

유튜브 ‘떼껄룩’ 채널의 플레이리스트들

 

 이 청취 방법은 듣고 싶은 곡을 정해두는 방식이 아니다. 제목을 검색해 플레이리스트를 찾으니 원하는 분위기나 테마를 어느 정도 정할 수는 있겠지만 뒤엔 어떤 곡이 나올지, 어떤 곡이 해당 목록에 포함될지는 플리 주인장의 마음이다. 감상자가 상상했던 음악, 또는 감상자의 취향에 꼭 맞는 음악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좋아하는 특정 곡을 마음대로 골라 듣기 이토록 편리한 시대에 유행하는 것이 물음표 상자 같은 ‘플레이리스트’라니. 처음에는 조금 아이러니했으나 금세 그 감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해둔 ‘그 곡’이 아니라 누군가 고른 음악들을 틀어 두고, 노래의 분위기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기는 것. Z세대가 푹 빠져 있는 ‘유튜브 플리 감성’은 가장 전통적인 음악 감상 플랫폼인 라디오의 방식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플리를 즐기는 이들에게, 비슷하고도 조금은 다른 방식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본다.

 

 

BBC에서도 생방한 프로들의 팝송 Playlist

 남이 골라주는 음악을 저항 없이 틀어 두는 걸 꽤 좋아한다면 당신을 라디오에 초대하고 싶다. 가장 손쉽게 닿는 플랫폼인 유튜브가 익숙하겠지만, 이 라디오에는 오늘의 음악을 고심 끝에 고르고 오늘만의 이야기를 붙이는 것이 31년째 ‘업’인 사람들이 있다.

 ‘MBC 라디오의 대표 팝 음악 전문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SNS 소개글 첫 문장이다. 2021년 현재 국내에서 한 장르 음악만을 전문으로 들려주는 라디오는 상대적으로 적다. 평소 팝송 플레이리스트를 찾는 사람이라면, 이런 추세 사이에서도 31년째 뚝심 있게 팝 음악만 들려주는 배캠을 특별히 믿어 봐도 좋을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무려 1990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팝 전문 라디오이다. 더 놀라운 점은 DJ뿐 아니라 작가들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만 일이 넘게 매일매일 선곡과 이야기를 만들며 알차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토요일에는 ‘American Top 20’, 일요일에는 ‘빌보드 선정 매해 여름 차트 1위 곡’, ‘영국 싱글차트 100위 안에 가장 오래 머문 곡’ 같은 코너로 팝 음악의 핵심 곡들을 모아 들려준다. 영화음악을 모아 들려주는 날도, 팝 칼럼니스트와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날도 있다. 팝 전문 라디오를 오래 진행한 전문가인 만큼, DJ는 몇십 년간 들어온 음악들을 기반으로 알고 있는 에피소드나 음악 지식을 곁들여준다. 뚜렷한 테마가 있는 이 라디오는 아마 ‘플리 감성’을 통해 팝송에 입덕한 입문자부터, 팝 음악 애호가에게도 영양가 있는 청취가 될 것이다.

 

 

나의 감상이 오늘 방송을 함께 만든다면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청취자 댓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때 댓글 없이는 못 듣는 사람이라면 라디오의 매력을 더 잘 느낄지도 모른다. 유명한 플리 채널 댓글에는 늘 음악에 대한 가지각색의 감상이 빼곡히 적혀 있다. 노래 틀자마자 하이틴 영화 주인공으로 빙의된다’, ‘내 방에서 에펠탑 보이는 것 같다’처럼 사람들은 들은 음악이 불러오는 이미지와 감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사실은 이 소통의 문화가 플레이리스트 유행에 절반은 기여하지 않나 싶다. 같이 듣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댄다면, 라디오에서도 DJ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실시간 소통까지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매일 힘차게 “배철수의 음악캠프, 출발합니다!”를 외치고 시작하는 이 DJ에게서는 매끄러움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히 들려주는 발음을 듣다 보면, 여전히 음악 이야기를 정성껏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 더 귀담아듣게 된다.

 또, 라디오의 묘미는 소통이 ‘실시간’이라는 점이다. 다른 청취자들과의 소통도 감상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준다. ‘*디’라는 명칭을 DJ 데뷔 주에 정하는 요즘 라디오 문화와 달리, 배캠 청취자들은 DJ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보낸다. 하트는 딱 두 개까지만 보낼 수 있다는 이곳만의 유쾌하고 투박한 규칙도 있다. 조금만 듣다 보면 동시에 서로 다른 곳에서 소통하며 듣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최근 가장 유행하는 음악 감상법과 가장 오래 이어져온 라디오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같이 감상’ 문화는, 오랜 라디오에서부터 이어져온 DNA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는 노래를 골라 듣기보단 프로의 세심한 선곡에 귀를 맡기고 싶다면, 플레이리스트를 사랑하는 Z세대라면. 당신은 비슷하고도 다른 감성을 가진 라디오도 사랑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