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작은 친구들을 위해

2019. 5. 24. 02:13Contents/교양

<도시 x자연 다큐멘터리 도시의 묘() 동거>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도시에서 함께 산다는 걸 잊어버리곤 합니다. 

서로 바라보는 세상의 높이가 다르고, 그래서 우리가 눈을 마주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왠지 우리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나요? 

 

길을 가다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가만히 잘 걷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갑자기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 쪼그려 앉아 자동차 아래를 쳐다보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사람, 골목 한구석에서 휴대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는 사람. 당신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어쩔 줄 모르는 ‘고양이 덕후’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진 앨범에 고양이 사진이 많다고 해서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순 없다. 진짜 ‘덕후’라면 덕질의 대상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MBC 스페셜 <도시 x자연 다큐멘터리 도시의 묘(猫)한 동거>가 지난 6일 방송됐다. <묘한 동거>는 작년 8월 방영돼 화제가 되었던 <고냥이>의 후속작이다. <묘한 동거>는 길고양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양이들의 속사정을 알아야 고양이를 위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고양이 화보집 수준의 영상미는 덤이다.  

 

생존형 필살 애교 

고양이에게 겨울은 정말 가혹한 계절이다. 눈이라도 내릴 경우엔 더 그렇다. 몸이 젖은 채로 돌아다니다 얼어 죽을 수도 있고 마실 물이 부족해 방광염에 시달릴 수도 있다. 고양이가 운이 좋게 친절한 도시 사람을 만난다면 따뜻한 안식처와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는 그러지를 못한다. 그래서 어떤 고양이는 직접 ‘생존의 길’을 찾아 나선다. 바로 인간의 생활공간에 직접 터를 잡는 것이다. 보호를 받기 위해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배를 내보인다.  

 

사실 이렇게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게 고양이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길 위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건 오히려 더 많은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지만 고양이들에게는 그것이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어느 날 길고양이가 유난히 귀엽고 깜찍한 애교를 부린다면 그 고양이는 정말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도 드디어 고양님의 간택을 받았구나’ 하고 마냥 좋아만 할 게 아니란 거다.  

 

‘스트릿’은 처음이라

길고양이들은 정말로 길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니다. 사람에게서 길러지다가 버려지거나,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들이 낳은 새끼들 중 살아남은 개체들이 대부분이다. 사람 손을 탄 고양이는 야생에서 더욱 살아남기 힘들다. 무리에 어울리고 사냥법을 익히는 동안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야생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생존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사람이 살 곳을 만들기 위해 도시는 무분별한 개발을 반복해왔다. 고양이들은 그렇게 자연에서 도심으로, 빈 집에서 폐허로 쫓겨났다. 밤새 짝을 찾느라 시끄럽게 울고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어 놔 온 사방에 냄새를 풍기는 그 고양이들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지난 설 연휴 기간만 해도 1500마리의 동물들이 유기됐다. 당장 길 위의 생명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을 험난한 길 위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절실하다. 하지만 고작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재의 전부다. 제도 개선이 시급한 부분이다.  

 

도시의 작은 친구들을 위해

<묘한 동거>는 최대한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동물 학대나 동물법과 같이 마음 아프고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도시 사람과 길고양이의 따뜻한 관계에 집중했다. 부담은 없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양이같이 팬덤(?)이 크지 않은 동물이라면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나타나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야생 멧돼지나, 한때는 ‘평화의 상징’이었다가 지금은 ‘오물의 상징’이 되어버린 비둘기 같은 동물들 말이다. 모두 사람에 의해 터전을 빼앗기고 다시 사람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양이와 사정이 비슷하다. <도시 x자연 다큐멘터리>가 계속되어 좀 더 많은 생명들을 다루었으면 하는 이유다. 도시의 동물들은 살아야 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설령 그 동물들이 인간의 눈에 귀엽고 깜찍하지 않아도 말이다. 신이 생명을 만들 때 인간에게는 동물을 지배할 힘과 함께 ‘책임’을 동시에 부여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그 책임을 다할 것인가. <도시 x자연 다큐멘터리>가 질문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한다.

 

MBC 스페셜 <도시 x자연 다큐멘터리 도시의 묘()한 동거> 다시 보기 

http://www.imbc.com/broad/tv/culture/mbcspecial/vod/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