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8. 10:27ㆍContents/교양
“이거 실화야?”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감탄사가 됐다.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특히 유용한 표현이다. “진짜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실화 탐사대>의 아이템들도 제목처럼 그런 ‘소설 같은 실화’들을 다루고 있다. 에피소드 자체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놀랍기도 하고, 또 영화 같은 사건 전개가 재밌다. 또 믿기지 않는 사건 속엔 또 다른 “이거 실화?”를 외치게 만드는 장면들도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착잡하다. 너무도 극적인 얘기들이 실제였단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지난주 수요일 방영한 32회에서 다룬 두 극적인 사건(칠곡의 폐가, 청년 기부왕)을 보고서도 그랬다.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이 무척 안타깝기도 했지만, 주인공이 당최 왜 이런 황당무계한 일들을 벌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획 의도대로 프로그램이 우리 사이의 공감을 넓히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됐는지 고민해 보았다.
너에겐 쓰레기, 나에겐 다이아몬드
첫 번째 이야기는 칠곡의 미스터리한 집 주인의 비밀에 관한 것이었다.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집 때문에 주변 인가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집주인은 고물을 모아 되파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쓰레기에 집착하는 그 때문에 주변 이웃들은 이미 화가 날대로 난 상태였다. 남자가 쓰레기 섬을 만들게 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 집에서도 이미 이웃 주민과 똑같은 갈등이 있었다. 이후 이사 온 집에 불까지 났고, 그는 폐허가 된 집을 다시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Q1. 전문가의 분석만으로 호더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나?
방송은 최 씨가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폭력성보다 쓰레기에 집착하게 된 ‘개인적 사연’이 더 궁금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사실은 너무 많은 곳에서 호더(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 소재가 크게 놀랍지만은 않았다. 호더들의 문제를 개인의 구체적 삶의 경험을 토대로 짚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에게는 그 쓰레기들이 다이아몬드나 다름없다는 전문의의 진단이나,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진 이들에 대한 왜곡해석을 하게 되었다는 교수의 분석은 1차 논평정도에 그치는 인상이었다. 그가 언제부터 가족과 단절되었는지, 원래 하던 일이 있었는지, 생계는 어떻게 유지가 되고 있는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등을 조명해줬다면 그의 행동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Q2. 행정처분 또는 시스템 마련을 위한 충분한 문제 제기가 되었나?
그는 골목까지 쓰레기를 쌓아 놓기 시작했다. 이웃이 한마디만 해도 흉기를 휘두르거나 폭력을 행사했다. 칼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핀이 박힌 나무토막으로 사람을 내리쳤다. 누구든 두려움에 질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웃들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이러한 마을 주민들의 난처한 상황을 속수무책인 행정처분을 대비시키기 위한 거의 유일한 목소리로 등장시켰다는 점이 아쉬웠다. 군청은 청결 유지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고, 그것조차 지키지 않았을 때 과태료만 부과될 뿐이다. 관할 경찰도 강제적으로 그를 사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법적인 테두리는 그저 존재하는 팩트일 뿐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호더 문제와 사회와 단절될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문제 제기가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호더는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나타나는 사회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이 전부가 아니다. 뾰족한 수가 없지만 더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또 호더는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독거노인뿐만 아니라 이혼남녀들에게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복합적 현실도 언급해 주었다면 왜 그에겐 쓰레기가 다이아몬드일 수 있는지 조금은 더 와 닿았을 것 같다.
2019년 홍길동 – 대학생 기부왕의 사기행각
두 번째는 알고 보니 사기왕이었던 청년 기부왕의 이야기다. 그는 7년간 봉사활동을 해왔고, 지난 4년간 18억 8천만원을 기부했다. 또 대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었다. 모두 사실이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홍길동이었다. 문제는 그 돈의 출처와 사용용도다. 그의 기부로 도움을 받은 학생과 단체가 많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의 사기행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오랜 주식투자 경험으로 가능한 일이었다던 ‘대박 수익률’은 거짓이었다.
Q1. 그는 왜 잘못된 기부를 멈추지 못했을까?
언론과 방송에서 유명해진 그는 돈을 기꺼이 맡아 주겠다며 주변사람들을 설득했다. 그와 같이 수익금을 주변에 나누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들은 전 재산을 맡겼다. 하지만 그는 연이어 투자 실패를 했고, 2억원 이상의 원금 손실이 났다. 그런데 그는 계속 기부를 하고 또 약정까지 맺었다. 심리학자의 분석대로 기부가 그에겐 투자를 받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가지 아이템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사건 이면에 숨겨진 사회구조적 문제를 모두 짚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어느 정도는 포맷을 변용할 필요도 있다. 그가 기부를 끊지 못한 배경에는 한국의 만연한 생존주의, 성공 신화에 대한 강박감이 있었다고 본다. 주식실패에서 오는 자신의 열패감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기행각을 멈추지 못했을 수 있다. 피해자들 입장만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다, 기부왕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재연 장면에 포함되었다면 완성도 있는 문제 제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성공한 삶에 대한 집착이 비단 박철상 씨 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까지 확장했다면,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 같다.
Q2. 학교의 윤리의식, 이거 실화?
박 씨의 기부금을 받았던 대학의 태도도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학교의 윤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회계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만 하고, 박철상 씨를 명예의 전당에 계속 올려놓고 있는 대학의 대응은 또 하나의 “이거 실화야?”를 말하게 하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교육기관으로서 학교는 투철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자기검열에 민감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학생들을 성숙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길러낼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제작진의 지적대로 학교는 불법 자금으로 기부된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수여한 사실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했어야 한다. 재정적인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그게 교육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다.
우리는 선의 앞에서 한없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서일 수도 있다. 박철상 씨의 숭고한 기부 정신은 모든 의심을 잠재울 수 있던 최적의 도구가 되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알고 보면 모두가 아픈 이야기다. 단순히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 혹은 이상한 거네 라는 판단보다, 그 사람이 왜 그랬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실화탐사대>가 계속해서 던져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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