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MBC가 여기랑?

2019. 12. 30. 11:57Contents/예능

벼랑 끝 지상파, OTT와 유튜브에 반격할 수 있을까
저녁에 집에서 뭐 보세요?… 유튜브, TV 제쳤다

위 기사 제목들은 모두 위기에 빠진 TV와 영향력을 키워가는 디지털 콘텐츠라는 형국을 보여준다. 시간 맞춰 TV 앞에 자리 잡고 본방을 사수하는 시청자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OTT 서비스로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다시 보고, 짧게 편집된 클립으로 간편하게 즐거움을 맛본다. TV의 위기, 지상파의 위기라는 말은 진부할 만큼 쉬이 들려온다. 디지털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을 위기로 몰아넣은 강력한 경쟁자로 보였다. 즉, 시청자를 향한 제로섬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과 디지털 콘텐츠는 위 기사 제목처럼 상대에게 반격해야 하는, 상대를 제쳐야 하는 관계라고만 여겼다. 당연히 이 둘이 협업한다는 선택지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여느 날처럼 할 일 없이 유튜브를 뒤적이던 중, Dingo Freestyle(DF)에 올라온 영상 제목 앞에 요상한 괄호를 발견했다. (딩고가 MBC에 빨대를?!) 

아니? 딩고에 웬 MBC? 기분이 딱 '?!'였다. 생각지 못한 선택지를 이미 MBC와 DF는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 놀라움과 짜릿함이 느껴졌다. 이 둘은 서로를 견제하고 반격하는 대신 서로에게 빨대를 꽂고 영역을 확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새로운 확장의 시작은 또 다른 확장을 불러왔다.  <주X말의 영화> 시작 전, DF의 간판 콘텐츠라 할 수 있는 킬링버스로 프로그램의 밑밥을 깔았다. 유튜브 콘텐츠답게 웹툰 작가 이말년과 주호민이 랩을 한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콘텐츠로 화제를 일으켰다. 침착한 주말2 <주X말의 영화>의 화려한 시작이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주호민과 이말년이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예능으로 담아냈다. DF는 원래 신곡을 내기 전, 해당 아티스트의 모습을 담아내는 콘텐츠를 만들어 관심도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이 방식이  <주X말의 영화>에도 적용된 것이다. 영화 <잠은행>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시청자들이 지켜보며 마치 주호민, 이말년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간 듯 내적 친밀감을 키워가게 된다.   

<주X말의 영화>는 MBC와 DF만의 콜라보는 아니었다. 디지털무비 <잠은행>의 제작은 ‘돌고래유괴단’이 맡았고, 영화의 OST로는 래퍼 뱃사공이 참여했다. 

<주X말의 영화>는 음악, 영화, 예능까지 뻗어 나갔다.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들과의 융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확장이었다.

미디어 트렌드에 맞춰 MBC는 변화했다. 생각보다도 과감하게 변화했다. 변화해야 살아남는다지만, 이미 많은 게 갖추어져 있고 두터운 규정이 있는 지상파에서 시청자가 과감하다 느낄만한 변화를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MBC는 딩고가 만든 ‘찐’ 유튜브용 콘텐츠를 ONLINE을 넘어 ONAIR로 방영했다. <주X말의 영화>는 선 유튜브 후 TV라는 파격적인 순서로 방영됐다. 금요일 오후 7시에 유튜브 계정 ‘MBC entertainment’와 ‘DF’에 선공개된 후, 토요일 밤 12시 45분에 TV를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시간뿐 아니라 형식 또한 유튜브에 우선적으로 맞춰져 있었다. <주X말의 영화>는 15~20분 내외의 숏폼(short form)으로 방영됐다. TV 예능의 형식을 우선으로 하고, 이를 여러 개의 클립으로 잘라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형식으로 만들어낸 후 이를 지상파 방송으로 내보내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나는 DF를 구독하고 있었기에  <주X말의 영화>를 먼저 접하게 되었지만, MBC가 딩고와 돌고래유괴단과만 콜라보한 건 아니다. MBC는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를 만든 와이낫미디어, <연애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한 플레이리스트 같은 굵직굵직한 디지털 콘텐츠 회사와 함께 했다. 아예 금요일과 토요일 밤 20~25분 정도는 디지털 제작사 콘텐츠만을 방영하는 ‘스튜디오D’ 시간으로 편성했다. 이러한 콜라보는 MBC에게도 디지털 콘텐츠 회사에게도 유의미한 도전이다. 지상파의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디지털 콘텐츠의 문법을 흡수하고 이제는 중장년층이 주 시청층이 되어버린 지상파 방송의 시청층을 젊은 세대까지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 회사에게도 이 협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공중파까지 손을 뻗칠 수 있는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 편성은 어느 시간대에 어느 프로그램을 배치할지 결정하여 시청률을 최대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편성은 보다 큰 개념이다. 시청자들은 TV 앞에 앉아 수동적으로 방송을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시대다. 즉, 고정형 TV를 몇 명이 봤는지 측정하는 시청률이라는 도구는 프로그램의 실 영향력, 인기와는 거리가 있다. 시청률만을 견제하며 편성하는 건 점점 무의미해진다. 

 

만약, MBC가 방송 시청률만 생각했다면 유튜브 선공개라는 편성도 없었을 것이다. 이젠 어떻게 지상파 방송이 새롭게 확장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경쟁이 아닌 콜라보레이션을 상상하고 TV 뿐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 방송을 내보내 시청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편성이 필요하다. <주X말의 영화>처럼 말이다.  디지털무비 <잠은행>은 유튜브로 선공개되고 TV로 방영된 후, 틱톡에 인터렉티브 영상으로도 올라가 색다른 결말을 볼 수 있도록 시청자들을 유도했다. 

유튜브에서 <잠은행> PART1은 63만 회,  PART2는32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https://youtu.be/Z7Bc0zxK500

 https://youtu.be/YIEqy4TME44

MBC가 공중파에서 내려와 온라인 플랫폼과 적극적으로 만나 일어난 결과다. TV 방송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국 콘텐츠가 중요한 시기라는 말을 한다. 시청자들이 찾아올만한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건 편성의 ‘줄 긋기’가 아니다. 함께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이제 훨씬 훨씬 유리함을 <주X말의 영화>를 통해 보았다. ‘스튜디오D’라는 시간이 편성된 만큼 앞으로도 ‘아니? MBC가 여기랑 콜라보를 했다고?’라는 말이 나올 새로운 융합을 맛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