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MBC는 어떤 기업이에요?

2019. 12. 28. 23:06Contents/예능

 저는 1995년생으로, 밀레니얼과 Z세대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대부분 96년생부터 Z세대로 구분하기 때문인데요. 저만 하더라도 지상파 3사의 아성을 느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MBC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상파 방송사이자 공영방송’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수년 늦게 태어난 친구들만 하더라도 방송사에 대한 생각이 저와는 다른 것 같더라구요.

 

통상적인 세대구분에 따른 'Z세대'의 정의

제가 고등학생 국어 과외를 할 때 방송에 대한 비문학 지문이 나와, 과외 학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 너 지상파 방송이라고 들어봤어?”

“에이, 그건 알죠! KBS, MBC, SBS!”

“근데 지상파가 뭔지는 혹시 알아?”

“음… 아니요…”

“너네 집 TV 어떻게 보는데? 케이블? 스카이라이프?”

“아니요, 인터넷으로 봐요. 저희 집 SK 쓰거든요.”

ㅣZ세대에게 ‘지상파’란?

‘지상파 방송’은 지상에 세운 안테나를 통해 방송 전파신호를 송, 수신하는 방송 형태입니다. 방송법에서는 ‘방송을 목적으로 하는 지상의 무선국을 관리, 운영하며 이를 이용해 방송을 행하는 사업 및 사업자’라고 규정하고 있죠. 방송에 대한 접근은 보편적인 권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현재는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만 있으면 전국 모든 곳에서 지상파 방송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파트를 건축할 때 지상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를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있을 정도이니까요. 이런 중요성 때문에 지상파 3사는 항상 앞번호 대의 채널을 부여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지상파 방송’이란 이름에는 상징성만 남아있을 뿐, 그 실효성은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 이상 지상파를 수신해 TV를 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인데요. 여러분 중 혹시 안테나로 TV를 보시는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대한민국 5% 안에 드는 것입니다…!

지상파를 수신하는 비율은 매년 줄어들어, 이제는 5%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내막을 모르는 Z세대에게 MBC는 이제 그저 ‘앞번호 대에 있는 채널’로 생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채널이 수백개씩 있는 상황에서 11번과 15번, 20번에 큰 차이가 있을까요? 당장 광고수익만 놓고 봤을 때에도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광고 매출 점유율은 점차 하락하는 추세인 반면, 경쟁하는 프로그램 제공자(PP)들은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제는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권위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ㅣZ세대를 움직이는 키워드, ‘디지털’

 MBC가 Z세대를 상대할 때 고려해야할 점은 그들이 TV를 어떻게 보느냐 뿐만이 아닙니다. MBC를 대체할 수 있는 매체가 비단 타방송사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Z세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디지털 네이티브’인 것을 알고 계신가요? Z세대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가 상용화된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이 없는 환경을 더욱 어색해 하는데요. 특히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적응력이 남달라서, 정보를 검색하고 수용할 때에도 텍스트보다 영상을 선호합니다.

 

 또한 세대가 거듭될수록 한가지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계속 짧아지고 있는데요. Z세대의 경우에는 이 길이가 8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TikTok’과 같은 숏폼 동영상 플랫폼이 10대들 가운데에서 인기를 끌고 있죠. 웬만한 드라마나 예능이 80분 정도로 편성되는 것을 생각해볼 때, TV 프로그램을 보는 Z세대의 집중력은 수십 번도 더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Z세대의 순간 집중력은 8초에 불과하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Z세대가 MBC를 시청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이야 Z세대가 대부분 10대, 많아봐야 20대 초반이라 이 문제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년만 지나면 Z세대가 30대가 되고, 그들의 구매력을 무시하지 못할 상황이 올 것입니다.

 

ㅣMBC의 새로운 정체성, ‘허브’ 방송사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MBC라는 기업의 정체성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모든 것을 다 잘하는 ‘팔방미인’이 될 수 없다면 어떤 미디어 기업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저는 MBC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는 모든 것을 연결하는 ‘허브’의 역할을 맡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MBC가 보유한 다양한 채널이 플랫폼이 되고, 그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채워넣는 것이죠. 이는 자연스럽게 그 이해관계자가 보유하고 있는 인플루언스를 내재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채널이 다른 플랫폼에 들어감으로써 MBC는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MBC의 미래는 연결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앞의 말이 추상적이고 복잡해보일 수 있는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협업하고 제휴하자’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Z세대에게 소구할 수 있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직접 운영하고 제작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 하고 있는 회사들과 손을 잡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미 MBC는 이러한 협업의 발걸음을 내딛었는데요. 저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와이낫미디어’와 협업해 웹드라마 ‘연애미수’를, ‘딩고’와 협업해 웹예능 ‘주말의영화’를 제작했습니다.

MBC는 디지털 제작사들과 협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콘텐츠 단위의 협업을 기반으로, 협업의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유망한 분야는 당연히 ‘디지털’입니다. MBC의 모든 유튜브 채널을 MBC가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곳에 올라오는 모든 재편집 콘텐츠를 MBC가 직접 제작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플랫폼의 성격에 특화된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서 플랫폼 적응력을 높이고, 타겟 시청자에게 적절히 소구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는 광고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Z세대가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를 연계한 광고상품 역시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TV 프로그램 및 TV 프로그램과 연계된 디지털 프로그램을 활용해 다채널 광고를 제작하고, 이를 다시 커머스 플랫폼과 연계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MBC는 방송 트렌드를 선도하는 방송사로 각인되어 왔습니다. 비록 미디어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해 Z세대에게 있어 MBC의 위상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허브’가 됨으로써 이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